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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리3층석탑

장하리3층석탑 사진

상세정보
  • 구분 : 보물
  • 지정번호 : 제184호
  • 지정일 : 1963.01.21
  • 관리자 : 부여군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상세설명

백제의 옛 땅이었던 충청·전라도에는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양식을 모방한 백제계 석탑이 몇 개 전하고 있는데 이 탑 역시 그런 계열에 속하는 탑이다. 땅 위에 자연석에 가까운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같은 돌로 너비를 좁히면서 3층을 쌓아 기단(基壇)을 만들었다. 탑신(塔身)은 네 귀퉁이에 위로 오를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기둥모양을 새겼고, 그 사이에 긴 판돌을 세워 면을 이루게 하였다. 3층에서 주목되는 점은 1·2층과는 달리 한 개의 돌로 몸돌을 이루었고 모서리에 기둥조각을 두는 대신 북쪽면에 세로로 긴 감실(龕室)모양을 새겼다는 것이다. 감실은 목탑에 많이 나타나던 것으로 불상을 모시는 방을 의미한다. 석탑에서는 대부분 이를 형상화하는데 그쳐 모양만을 새기는 정도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전체적으로 탑신의 몸돌이 높고 지붕돌은 지나치게 넓어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모방하였다고는 하지만 조형감각이나 수법에서 훨씬 떨어지는 작품이다. 1931년에 탑신 1층의 몸돌에서 상아불상, 목제탑, 다라니경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1962년 해체 수리시에는 2층에서 지름 7㎝, 깊이 12㎝로 사리를 두는 공간이 둥근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41개의 사리가 들어있었다. 이 유물들은 모두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암리 와요지

정암리 와요지 사진

상세정보
  • 구분 : 사적
  • 지정번호 : 제373호
  • 지정일 : 1992.05.04
  • 관리자 : 부여군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47
상세설명

사적제373호 부여 백마강 건너 야산 남쪽 비탈에 있는 백제 가마터이다. 백제 가마 11기와 고려시대의 가마 1기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고 들어가 만든 지하식 가마이며 천장을 제외하고는 완전하게 남아있다. 출토 유물은 연꽃무늬 수막새, 상자형 전돌, 토기, 각종 기와 등이 있다. 연꽃무늬 와당은 군수리와 동남리에서 나온 와당과 비슷해, 이곳에서 기와를 구워 부여의 주요 건물에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6세기 후반~7세기전반) 가마터로서 그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백제가마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백제시대 사비성이었던 부여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백마강변 내동부락 일원에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이 학계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87년 7월경 부여지방에 집중적으로 내린 호우로 가마의 천정일부가 노출되면서 비롯되었는데 88, 90, 91년 3차에 걸친 국립부여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대규모의 백제시대 와요지가 다양한 구조로 완형에 가깝도록 잘 남아있어 백제가마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유적의 중요한 특징을 보면 풍화암반층을 옆으로 파고들어가 구축한 지하식 평요와 처음으로 등요가 함께 발견되어 등평요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고, 발굴조사결과 드러난 10여개의 가마는 천장부분을 제외하고는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연도, 요앞 회구부가 완전하게 남아 있어 가마의 전체형태와 구축방법은 물론 세부구조와 축조기술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또한 연화문와당과 상자형전돌 등의 출토유물을 통하여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사원지인 군수리 폐사지(사적 제 44호)와의 수급관계가 밝혀져 관요생산체제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정암리 가마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마가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고대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유적의 특성과 출토유물, 주변의 입지조건(백마강변)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 제작된 제품들이 당시의 도성이었던 사비성(현 부여)을 비롯한 사찰 등 건물조성에 주로 쓰여졌을 가능성을 엿볼수 있고, 한편 이 유적 인근에는 백제시대(후기)의 고분 30여기와 산성(테뫼식)등 백제시대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서 이 유적의 가치는 더욱 더 중요시되고 있다.

흥학당

흥학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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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도지정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제125호
  • 지정일 : 1987.08.03
  • 관리자 : 풍양조씨 종중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617
상세설명

조선시대 과천현감을 지낸 조태징 선생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남산사(南山祠)의 부속 건물이다. 영조 46년(1770)에 지어졌으며, 서당으로 사용되었다. 집 안에 걸려있는 「흥학당기」에 의하면 풍양 조씨 가문이 학문을 강론하고, 이를 게을리 하지 않고 일으킨다는 뜻을 가지고 세운 것으로 글 읽는 소리가 마을에 가득했다고 전한다. 건물은 ㄷ자형의 평면 구성으로 가운데에 6칸의 대청이 있고 양쪽에 5칸의 방이 연결되어 있는 주택풍의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수수하고 단아한 겉모습을 갖추고 있다

조신의 묘

조신의 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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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119호
  • 지정일 : 1984.05.17
  • 관리자 : 조씨 문중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335-29
상세설명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場岩面) 점상리 덕림고개에 있다. 태종이 무학으로 하여금 친히 보게 한 묏자리라고 한다. 묘비는 후손 조속(趙涑:1595~1668)이 조신의 발자취를 모아 세웠으나 심하게 훼손되어 1734년(영조 10)에 다시 세운 것이다. 재질은 흑요암(黑曜岩)이고, 높이 200㎝, 너비 72㎝, 두께 42㎝이다. 비문은 후손 조최수(趙最壽)가 지었으며,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현명(趙顯命:1690~1752)이 썼다. 조신은 원래의 이름은 사겸(思謙)이었는데, 봉상대부(奉常大夫) 회양(淮陽) 도호부사에 재임중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부여군 임천면(林川面)에 은거하면서 이름을 신으로 고쳤다. 이색(李穡:1328~1396),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친분이 두터웠다. 태종의 어릴 때 스승으로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후손들을 불러 벼슬을 내리고 후히 대접하였다.

덕림병사

덕림병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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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충남 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제305호
  • 지정일 : 1988.08.30
  • 관리자 : 강신동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덕림로 243-24
상세설명

1988년 8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풍양조씨 종중에서 고 강신동이 소유하고 강신동이 관리한다. 창건연대는 잘 알수 없으나 조선초기에 세원진 것으로 전해진다. 성주산 자락에 자리한 이지역은 예로부터 덕림동이라 불렀다. 덕림고개 아래 중턱에 있는 덕림병사는 예전에는 덕림사(德林寺)라는 사찰 건물이었으나 1920년 무렵 중수하여 조신(趙愼)의 재실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로, 건물 정면에 덕림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고려 공민왕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조신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부여 임천면(林川面)에 은거하였는데 현재 부여 세도면(世道面) 동사리(東寺里)의 동곡서원(東谷書院:충청남도문화재자료 92)에 그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는 그의 묘소는 사우(祠宇) 왼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 태종(太宗)이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에게 명하여 잡은 자리라고 전해진다

장암 송죽 억새길

장암 송죽 억새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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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분 :
  • 지정번호 :
  • 지정일 :
  • 관리자 :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원문리 송죽마을 건너편 금천변
상세설명

장암 송죽 억새길은 원문리 송죽마을 건너편 금천변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억새밭에 조성된 길로 전체 길이가 2.57km이며 각각 600m 남짓의 4개 구간으로 되어 있다. 금천변 억새밭은 대개 산에 형성되는 억새밭과 달리 물이 흐르는 하천변에 위치해 또 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행의 부담이 없이 은빛 물결속의 억새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가족 나들이 혹은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알맞은 곳이다. 송죽 억새길 옆의 강둑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장관이다. 억새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강둑길은 석동리에서 합곡리에 이르는 억새밭이 한눈에 조망되며 강둑 너머 드넓은 구룡평야의 시원스런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