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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 금공리 '장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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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산 금공리 장승제 1

(왼)진대와 함께 선 장승 1995, 금공리 (오)돌장승으로 대치한 모습 2000, 금공리 / 출처: 부여군지

은산면 금공리에는 예로부터 산제와 벼락바우제, 장승제, 서낭제, 둥구나무제 등 다양한 마을의 공동제사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지나면서 다른 제의는 없어지고 산제와 장승제만 이어지고 있다.

이중 장승제는 산제를 지낸 후에 이어지는 제다. 예전에는 산제를 지내고 벼락바우제를 지낸 후 장승제를 지냈다. 벼락바우제는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벼락바우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원래 장승제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벼락바우제가 소멸되면서 산제가 끝난 자정무렵 곧바로 지낸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나 초 이튿날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근에 장승나무를 베러 갔다. 그러나 현재는 장승제 당일인 음력 정월 초 사흗날에 장승목을 베러간다고 한다. 이 때는 반드시 손 없는 곳으로 가서 소나무와 참나루를 각각 한그루 씩 베어와야한다.

장승을 베는 벌목 현장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다. 장승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쌀 등의 곡식을 각자의 형편껏 낸 후, 산제를 지낼 때 소지를 올린다.

산제가 끝난 후 금공리로 돌아온 이들은 벌목한 나무를 거꾸로 해 조각을 한다. 이때는 반드시 소나무에는 ‘동방청제축귀대장군(東方靑帝逐鬼大將軍)’을 참나무에는 ‘남방적제축귀대장군(南方赤帝逐鬼大將軍)’을 구분해 적는다.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전달된 것은 없지만 동방은 청제장군이므로 소나무를 쓰고, 남방은 적제장군이므로 참나무를 써 온 것이라 전해진다. 이외에도 장승 옆에 솔가지가 붙은 어린 소나무를 같이 세우는데 이는 이유가 전해지지 않는다.

금공리는 현재와 달리 마을 입구가 두 곳이었다. 이에 과거에 따라 장승을 두 길목에 각기 한 개씩 세우고 동방장승, 남방장승 순으로 제를 지낸다. 제물은 산제를 지낼 때 쓴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장승제의 분위기는 풍장을 치며 시끄러운 분위기로 놀면서 이루어진다. 산제의 경건한 분위기와는 반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은산 금공리 '장승제'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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