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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따뜻한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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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부여 축제를 제안합니다.

  • 작성자이인백
  • 작성일2019-09-02 11:54:18
  • 조회수29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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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동부여의 전쟁과 갈사부여, 서부여의 탄생

동부여 대소왕은 재위에 28년간 있었는데, 고구려3대 태왕인 대무신열제 5년 서기22년 2월에 대소가 고구려로 쳐들어왔다가 고구려 장수 괴유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졸지에 왕을 잃게되자 이해 4월에 대소의 아우가 추종자들을 데리고 갈사수라는 곳에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는데 이 나라가 갈사국 혹은 갈사부여이다.
갈사부여는 3세왕 도두에 이르러 고구려가 날로 강성해 지는것을 보고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이때가 고구려 6세 황제인 태조무열제16년인. 서기68년 이었고, 갈사부여의 역년은 47년이았다.

대소왕이 죽던 해 7월에 대소왕의 종제(사촌동생)가
백성1만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이를 가상히 여겨 그를 왕으로 봉하여 서부지역인 연나부에 살게 하였는데 이 나라를
서부여 혹은 연나부부여라고 한다.
그의 등에는 띠같은무늬가 있어 고구려왕은 그에게
낙씨성을 하사하였고, 그런연고로 낙씨부여라고도 한다. 연나부 부여는 지리적으로 번조선이 있던곳에
가까이 있었고 모국인 동부여의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부여라고도 하며, 서기22년부터 서기 494년까지 존속하였다.
서부여의 6세왕인 의려는 선비족 모용씨에게 패하여
아들 의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바다를 건너가 왜를 평정하고 나라를 세웠는데 이게 바로 일본 최초의 통일왕조인 야마토왜를 세운 오진왕이다.
의려의 아들 의라가 오진왕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사서에 가끔 등장하는 부여는 북부여가 아니라
바로 473년간 지속된 이 서부여를 지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