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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부여 축제를 제안합니다,

  • 작성자이인백
  • 작성일2019-09-02 11:57:41
  • 조회수31
  • 첨부파일
내용보기
성왕은 왜 백제를 남부여라고 했을까?

유화부인인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혈통을 철저하게 인식한 고주몽은 해모수의 혈통을 몰아내고 북부여의
단군이 된 고두막한의 아들 고무서단군의 사위가 되지만, 해모수의 출신지인 고리지역의 지명을 따와
고리국.고구려를 건국하고, 예씨부인과의 아들인 유리에게 국권을 물려준다.
이에 소서노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두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하여 한강유역에서 마한54소국의 일원으로 나라를 건국한다.
지금의 하남땅에 도읍을 정한 온조는 비옥한 토지를 이용하여 농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기틀을 다졌고,
비류는 미추홀(인천 문학산)에 도읍히지만 실패한다
온조는 비류의 백성들을 통합하여 백제를 세우고,
위례성에 동명왕 고두막한의 사당을 세우고 스스로를
북부여의 계승자임을 내세웠다.

훗날 나라의 기틀을 다진 고이왕을 거쳐 4세기초 근초고왕때는 왜를 평정하고 고구려와 신라를
위협할정도로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5세기무렵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문자왕이 영토를 확장하며 한강유역을 빼앗아.
수도인 위례성이 점령당하자, 백제는 서기475년에 지금의 공주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긴다.
서기494년에는 고구려가 서부여마저 합병하게 되고
그 세력이 강력해 지자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항해 나가지만,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신라에게 내어 주게 된다.

백제 웅진성은 수비형도읍으로 적의 공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특히 서해로 나가는데 어려워 왜와의 교역이 어려워지자, 서기 538년 성왕16년에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후 국호마저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꾼다.
쇠퇴하여가는 국운을 바로잡고 백성의 혼을 일깨우고
역사적 종통을 앞세워 스스로 미륵이라 칭한 성왕!
후기북부여 고두막한의 적통자임을 선포한 성황!
1480년전 백제황제 성왕께서 정한 국호. 남부여!

여러분은 남부여 라는 국호가 얼마나 위대한 역사의
증거인지 아십니까?
남부여!
성왕께서 선포한 국호 남부여가
현재 우리 역사의 국통을 밝혀 주는 귀중한 증거라는 것을 아시나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밝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