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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따뜻한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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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부여 축제를 제안합니다.

  • 작성자이인백
  • 작성일2019-09-02 11:50:04
  • 조회수34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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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여 혈통의 뿌리 고두막한

북부여는 1세 해모수, 2세 모수리, 3세 고해사단군에 이어 4세 고우루단군재위 13년. 서기전 108년 계유년에 이르러 한나라무제 유철이 위만의 손자인 우거를 멸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부여로 대대적으로 쳐들어오자 나라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때 구국의 영웅으로 등장한 사람이 서압록인 고두막한이었다. 고열가단군의 현손으로 알려진 고두막한은 의병을 일으켜 한무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스스로 왕이되어 졸본땅에 나라를 세웠다.
고두막한은 스스로를 동명이라고 칭하였기에 그를 동명왕이라고 하며, 그가 세운 나라를 동명부여, 혹은 졸본땅에 있었다 하여 졸본부여라고 한다.
북부여 안에 있었던 작은 나라였던 것이다.
동명왕고두막한은 동명왕으로서 재위에 22년을 지내다가 서기전87년 갑오년에 북부여의4세 고우루단군 재위34년에 사람을 보내어
(나는 천재의 아들이다.장차 이곳에 도읍을 하고자 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위협을 견디지 못한 고우루단군은 얼마 못가서 붕어하시고 그 동생인 해부루가 즉위하였다.
이후에도 위협은 계속되었고, 해부루는 왕실을 보존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재상 아라불의 천거로
하는 수없이 무리를 거느리고가섭원땅으로 옮겨서
새로운 나라를 여는데 바로 동부여이다.
물론 이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잘 나와있다.
서기전108년에 있었던 한무제 유철이 위만정권을 무너뜨리고 북부여까지 집어 삼키고 한사군을 설치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탄생한 나라가 동부여이다.
북부여의 혈통이 해모수 모수리 고해사 고우루단군에서 고두막한단군으로 바꾸게 되었고,
이때부터 북부여는 동명부여 혹은 졸본부여라고도 하였다.
고두막한의 뒤를 이어 태자 고무서가 단군이 되었는데, 아들은 없고 소서노라는 딸이 있었다.(삼국사기에는 딸이 셋이 있었다고 나온다)
나중에 동부여에서 온 고주몽을 사위로 맞이하여 그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북부여의 단군이 된 고주몽은나중에 나라이름을 고구려로 바꿈으로서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되었다.
이것을 삼국유사에서는 (고구려는 졸본부여다)라고 했고,광개토호태왕비문에서는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나왔다)고 했던 것이다.
고주몽과 예씨부인과의 아들 유리가 고구려 2대 태왕이 되자 고두막한의 적통자인 소서노와
그의아들 비류와 온조는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