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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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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됐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시대 유적이 알려진 것은 1933년이다. 두만강 연안에 해당되는 함경북도 종성의 동관진에서 발견된 유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시대였던 만큼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으로 인해이 유적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말았다. 이후 구석기 유적의 존재는 해방 후 우리 나라 학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그 존재가 확인됐다. 해방 후 처음으로 구석기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63년에 북한에서 있었던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유적의 조사에 의해서였다.

당시 조사는 청동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유적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신석기시대 패총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 아래층에 있었던 구석기 문화층이 우연히 발견됐던 것이다.

1964년에 미국인 앨버트(Albert, M.)가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여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남한에서도 구석기 유적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이렇게 1960년 초 남한과 북한에서 다같이 구석기 유적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상원 검은모루 유적, 공주 마암리 동굴 유적, 서울 면목동, 제주도 빌레못, 제천 점말동굴, 청원 두루봉동굴, 연천 전곡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등 30여 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다.

구석기인들이 사용했을 주거지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사계절이 뚜렷한 만큼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주거지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동굴 유적을 제외하고는 주거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고 있는 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부여와 가까운 공주 석장리 유적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서 주거지로 보이는 유구가 발견된 바 있는데, 바닥면이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주거지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부여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30여 곳 이상의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 바 있고, 유적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지역이든 구석기시대부터 인류의 문명활동이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니다.

부여지역에서는 아직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조사된 바 없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주지역에 석장리 유적이 자리하고 있고, 또한 금강이 부여지역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조사 여부에 따라서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발굴조사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외산면과 홍산면에서는 지표조사를 통해 구석기시대 유물이 수습된 바 있어 이러한 추측이 무리가 아님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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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산면 반교리에 자리하고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산포지는 옛 반교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김효택 씨 집 옆의 밭 단애면에서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의 몸돌이라고 생각되는 석기 1점이 지표조사를 통해 수습됐으며, 이 집 위편의 구릉에서도 직경 10㎝ 내외 크기의 석영암편들이 발견됐다. 이 석영암편들은 형태로 볼 때 몸돌의 돌날을 제작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원래 구석기 유적에서는 여러 종류의 석편이나 석괴들이 발견되는 것이 보통인데, 몸돌석기와 찍지석기가 공존하고 있을 경우 그 지점 또는 인근에서 석기의 제작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반교리의 구석기 유적은 석기제작과 관련된 장소일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석기 제작장과 관련된 유적이 부여지역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부여지역이 구석기인들의 생활 무대가 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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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면 좌홍리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도 발굴조사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지표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된 유물 산포지다. 유적은 좌홍리 ‘작은 좌촌’ 마을에 있는 표고 15~ 20m의 구릉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는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지만 곳곳에 고토양층이 산포돼 있어 구석기 유적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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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홍리 유적에서는 지표조사를 통해 석영암제의 양날찍개 1점을 수습했는데, 마모가 심해 날의 형태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8.0×7.5×6.0㎝ 크기로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외산면 반교리와 홍산면 좌홍리에서 발견된 석기는 발굴조사를 거친 것이 아니고, 그 수량도 매우 적어 더 이상의 추측은 곤란하지만 석기의 재료나 형태로 볼 때 구석기시대 전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앞으로 이 일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유적의 존재가 좀더 확실해 진다면 부여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 및 생활방식 등을 밝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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