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행복한 동행 따뜻한 부여

올바른 인터넷 문화정착 및 책임있는 게시를 위하여 실명을 사용하시기 바라며, 아래와 같은 불건전 게시물의 경우 게시자 동의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국가안전이나 보안에 위배되는 경우
  •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
  • 특정인, 단체 등을 비방하거나 명예훼손 우려가 있는 경우
  • 영리목적의 상업성 광고,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경우
  • 욕설, 음란물 등 불건전 내용
  • 유사내용 반복게재, 연습성, 오류, 장난성의 글
  • 기타 해당 게시판의 개설 취지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

본 게시판은 유용한 정보의 공유와 건전한 토론 등 이용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게시하는 공간입니다.

자유게시판의 내용은 민원으로 처리하지 않으므로 답변의 의무가 없습니다.

답변이 필요한 내용은 홈페이지의 [민원-민원상담신청] 메뉴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민원상담신청 바로가기 (각종 민원신청)

4. 남부여 축제를 제안합니다.

  • 작성자이인백
  • 작성일2019-09-02 11:52:12
  • 조회수28
  • 첨부파일
내용보기
동부여와 고주몽 그리고 소서노

고두막한에게 쫒겨난 해부루왕으로부터 시작된 동부여, 이때가 서기전 86년이다.
이것을 삼국유사에서는 재상 아란불의 꿈에 상제가 나타나 도읍을 옮기라는 계시를 내려서 그렇게 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환단고기 북북여기를 보면 동명왕고두막한이 군대를 보내어 계속 위협하므로 매우 난감해 하던차에 국상 아란불이(통하물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니 가히 도읍할 만한 곳입니다)라고 주청하여 마침내 도읍을 옮기니 이 나라가 바로 가섭원부여 혹은 동부여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이 동부여를 북부여라고 하고 있고,
시조를 해부루라고 하였으나, 북부여의 시조는 해모수 이고, 해부루는 해모수의 증손자이자 동부여의 시조였던 것이다.

해부루왕 재위8년인 서기전79년 임인년 5월5일에
주몽이 동부여에서 태어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는 금와왕이 유화를 보고
이상히 여겨 궁으로 데려온 것으로 나오는데 유화부인을 궁으로 데리고 온 왕은 해부루왕이고,
그는 해모수의 증손이므로 유화부인의 죽은 남편
고모수와 6촌 형제지간이었다. 그러니 주몽은
해부루에게 7촌조카였다.
해부루가 유화를 동부여로 데려온 이유이다

주몽은 7세에 활과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주몽은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몽은 일찍이 궁궐에서 말먹이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어느말이 좋은 말인지 어느 말이 비루먹은 말인지 훤히 꿰고 있었다.좋은 말은 적게 먹여서 비루먹은 말처럼 보이게 하고, 진짜로 비루먹은 말은 잘 먹여서 살을 찌웠다. 금와는 살이 쪄서 힘이 세 보이는 말은 자기가 갖고 비쩍마른 말은 주몽을 주었다.
21세되던. 서기전 59년 임술년에 주몽은 여러사람들의 시기를 받아서 유화부인의 명을 따라
세 친구 오이 마리 협보와 더불어 동남쪽으로 도망을 쳤다. 한참을 가다 엄리대수라고 하는 큰 강에 다다랐다. 건너갈 배는 없고 뒤에서는 동부여군사들이 쫒아오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광개토호태왕비문에 의하면 주몽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하백의 딸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이다. 나를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거북의 떼를
띄워서 물을 건너게 하라.) 이때 정말로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물위로 떠 오르자 그것을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설화적 냄새가. 많이 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몽은 자기가 천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획신 하였다는 점이다.
주몽은. 자신의 혈통이 해모수ㅡ차남고진ㅡ? ㅡ고모수(불리지)ㅡ고주몽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부여를 탈출한 주몽은 북부여6세 단군인 고무서 단군의 딸 소서너와 결혼하고 고구려를 건국한다.
동부여의 해부루왕은 서기전 48년 재위39년만에 붕어하고, 아들 금와가 왕이 된다.
주몽이 고구려의 왕이 된 후 10년이나 늦은 시기이다
금와는 41년간 재위에 있다가 서기전 7년에 붕어하고, 아들 대소가 제위를 물려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