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행복한 동행 따뜻한 부여

올바른 인터넷 문화정착 및 책임있는 게시를 위하여 실명을 사용하시기 바라며, 아래와 같은 불건전 게시물의 경우 게시자 동의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국가안전이나 보안에 위배되는 경우
  •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
  • 특정인, 단체 등을 비방하거나 명예훼손 우려가 있는 경우
  • 영리목적의 상업성 광고,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경우
  • 욕설, 음란물 등 불건전 내용
  • 유사내용 반복게재, 연습성, 오류, 장난성의 글
  • 기타 해당 게시판의 개설 취지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

본 게시판은 유용한 정보의 공유와 건전한 토론 등 이용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게시하는 공간입니다.

자유게시판의 내용은 민원으로 처리하지 않으므로 답변의 의무가 없습니다.

답변이 필요한 내용은 홈페이지의 [민원-민원상담신청] 메뉴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민원상담신청 바로가기 (각종 민원신청)

8. 남부여 축제를 제안합니다.

  • 작성자이인백
  • 작성일2019-09-02 12:00:31
  • 조회수30
  • 첨부파일
내용보기
잃어버린 우리 역사, 부여사를 밝히는 남부여!!!

부여사는 우리역사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여라는 나라는 여러개가 있었기 때문에 얼핏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북부여를 중심으로 한 관계 속에서 주변의 부여국들을 이해한다면 사실은 복잡할것도 없다.
그런데 기존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국내사서와
중국기록을 보면 앞뒤 시대의 내용이 명확하지 못하고 부여사가 서로 뒤얽혀 있어서 그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북부여와 동부여, 서부여가 서로 시간과 공간이 다름에도 그냥 부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여러가지의
사건을 마구 뒤섞어 놓았다는 데 있다.
왜 이렇게 부여사가 난도질 당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때, 한무제가 고두막한에게 패배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킨 데 기인한다. 그 후 중국의 사서에서는 북부여의 역사가 사라지고, 부여라는 이름으로 가끔 나올 뿐이다. 이처럼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은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핵심요체이다



춘추필법의 악폐에 놀아난 우리 부여사!!!

삼국유사 고조선기는 소략하지만 우리역사의 뿌리를 언급하고 있다는 면에서 참으로 소중한 기록이다.
위서라는 중국사서에 기록되었다며(요임금과 같은 시대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하였다) 라고 단군왕검의 건국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육하원칙에 입각한 신문기사 같은 기록이다.
단군조선의 건국연도는 당요무진설, 즉 당나라 요임금 제위 25년 무진년에 건국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바, 이는 바로 서기전 2333년이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단군세기에 따르면 단군은 2096년동안 47분이 계셨다. 따라서 서기전 2333년부터 서기전 238년까지 존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엄청난 실존역사가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사서에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중국사서에는 단군조선과 관련된 내용은 삭제하거나 왜곡,조작하여 실체를 알수 없도록 해 놓았다.

중국사서에 우리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대부분 알 수 없도록 조작한 이유는 공자의 춘추필법에 기인한다.
일찌기 공자가 자신의 조국인 노나라 242년의 역사를 춘추라는 책에 기록하면서 내세운 춘추필법이란 노나라의 상국이었던 주나라를 천하의 종주국으로 세우고자 역사기록의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원칙을 말한다.
춘추필법의 원칙은
첯째, 위국휘치 ㅡ중국에 영광스러운것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역사는 감춘다.
둘째, 존화양이ㅡ중국은 높이고 주변국은 깎아내린다.
셋째,상내약외ㅡ중국역사는 상세히 기록하고 주변국의 역사는 간략하게 기록한다.
공자라는 인물이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에 입각하여 주변국의 역사를 묻어버린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25사 대부분의 사서에 적용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관련된 역사기술은 대부분 진실을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있다. 중국사서는 절대로 적혀있는 그대로 보면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조선이다.
일부분을 기지고 마치 전체일양 인식하도록 기록해 놓았다. 원래 조선은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은 단군이 직접 다스린 단군 조선의 중심국으로
북만주 드넓은 대륙에 있었고,
번한은 단군이 임명한 대행자가 통치한 나라로서 지금의 중국동부의 광대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마한은 역시 단군의 대행자가 다스린 나라이며 한반도 지역에 있었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말하려면 심한의 역사를 따로 말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사서에 기록된 조선은
번조선만을 의미한다. 진한과 마한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우리역사에서 흔히 말하는 위만조선의 유래는 사기 조선열전이다. 그 첯 구절은 ( 조선왕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 위만이라고 했으면
위만 이전에 조선이 이미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설명이 있어야 할 텐데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조선왕 위만이라고 했다.
춘추필법의 상투적인 기술법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단군조선은 이미 북부여가 계승하였음에도 이를 숨기고 번조선의 역사만을 기록하여 은혜를 배반한 도적의 정권인 위만을 단군조선의 계승자인냥 기록하여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켜 놓았다.

이와 같이 춘추필법의 악폐에 의해 우리의 고대사인
단군조선의 역사와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의 역사가
난도질 당하였다